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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 - Lucky Charm

01.

"I feel the need... the need for speed!"

 

까맣고 작은 뒤통수와 머리통 하나 차이만치 더 큰 갈색 머리통 둘이 손바닥 부서지라고 마주치는 걸 보던 슬라이더가 보폭을 늘렸다. 매버릭. 까만 머리통의 겨드랑이 아래로 손을 쑥 집어넣어 시야를 맞춘 후에 작은 침음성과 함께 구스의 비명이 시끄러운 비행장을 갈랐다. 영문도 모르고 선글라스가 틀어질 만큼 진하게도 뺨에 입술이 비벼진 매버릭이 선글라스를 고쳐 쓸 생각도 못하고 멍하니 멀어지는 겅중한 길이감을 보다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이, 이... 뺨에서부터 목구멍으로 순식간에 차오르는 분노에 제자리에서 펄쩍 뛰는 매버릭을 잡아다 땅에 붙들어 맨 건 뒤 돌아 보지 않아도 마더구스였을 테지. 미사일이 어쩌고 격추가 어쩌고... 길길이 날뛰는 목소리의 문장 속 80%는 걸걸한 단어들로 저주를 퍼붓는 것이라, 아이스는 제 옆에서 휘파람과 함께 가벼운 발걸음으로 리듬을 타기 시작한 RIO를 바라보며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암만 그래도 뒷좌석이 격추당하면 저도 목숨이 위태했으니 오늘 훈련에서는 정신을 평소보다 두 배는 차려야 할 듯하여.

 

지상으로부터 가히 오만 피트 가까이 떨어져 상공을 누비게 되면 그러고 싶지 않더라도 정신이 없었다. 모든 움직임은 마스크 너머 마이크를 통해 교신을 주고받으며 상황을 전달해야 했고 눈으로는 계기판과 하늘을 동시에 살펴야 했으며 귀로는 관제탑으로부터의 승인과 뒷좌석 슬라이더의 이야기를 처리해 빠르게 다음 판단을 도출해야만 했다. 제 손에 달린 게 저의 목숨뿐 아니라 복좌기를 타고 있다는 것을 제일 큰 염두로 두고 무게감을 느껴야 하는 일 또한 중요했다. 비행은 다 좋은데 착륙하기까지 장기가 다 곤두서는 느낌이야. 그 언젠가 할리우드가 펜 뒤꽁무니를 씹으면서 했던 말이었나. 아이스는 '장기가 곤두서는 느낌'에 동의하는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비행이 마냥 즐길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에는 어떤 파일럿이라도 동의하겠다고 생각했다. 콜사인 값을 이백 배는 하는 파일럿 하나를 만나기 전까지는.

"톡투미 슬라이더."
"아직 따라붙고 있어! 우측으로 급선회!"
"우측으로 급선회."

정신이 하나도 없는 비행 와중에서도 오늘은 느낌이 달랐다. 십오 초 뒤에 고도 낮추고 기수 올려서 감속해. 빠르게 따라올 테니까 속도 못 이기고 우리가 여섯 시 방향을 잡을 거야. 데드 식스? 빠르고 간결하게 제스터의 후미를 잡을 방법을 풀어내는 슬라이더에 잠깐 말문이 막힌 아이스가 입을 다물고 컨트롤 스틱을 고쳐 쥐었다. 잡아보자고. 뒤통수가 차가워지며 아드레날린이 뇌수를 타고 번쩍였다. 지금! 단호하게 소리를 지른 슬라이더에 기수를 홱 들어 올려 멈춰 선 복좌기를 제스터가 빠르게 지나쳤다. 튕겨져 나가듯 앞으로 순식간에 치고 나간 제스터의 뒤꽁무니를 쳐다본 아이스가 비식거렸다. knock it off. 승리를 선언하는 웃음 섞인 목소리에 슬라이더가 마스크 속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저도 바보같이 낄낄대는 웃음이 배어 나왔고. 깔끔한 격추고 깔끔한 기동이었다. 네가 다 했어. 선글라스를 머리 위로 올려 쓴 슬라이더의 어깨를 두드려준 아이스가 기분 좋게 어깨동무에 힘을 주었다.

 

그때부터였다. 초록색 눈의 전투기 파일럿 하나에 대한 미신이 퍼지기 시작한 때가.

02.

기실 매버릭은 탑건 스쿨에서 콜사인만큼 영 미움만 받는 존재는 아니었다. 헬멧 사이즈가 몇일지 궁금한 작달막한 머리통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엿보고 싶어 하는 인간들이 많았다면 많았지, 그 낯짝에 가타부타 쏘아붙일 수 있을 만큼 괴팍하고 에고 높은 이들이 있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배운 대로만 비행하면 그건 그냥 재미없는 NATOPS 영상 교본이나 다름없지. 치퍼가 매버릭의 비행을 칭찬하며 했던 말이었다. 거위 날개 아래 비호를 받는 파일럿은 제가 뒤에서 무슨 소리를 듣는지까지는 관심을 두지 않아 더 많은 말들이 오갔다. 매브는 본능에 충실할 뿐이야. 그리고 대게 그 본능이 맞고. 그 본능이 제대로 빗나간 플라이바이 이후 혼쭐나고 돌아온 구스가 설명한 말이었다. 그 점이 가장 무모하다고 아이스는 지적하고 싶었으나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여느 때와 같은 시간이었다. 함께 닭을 쫓던 사랑과 일찌감치 가정을 꾸린 다정한 마더구스는 일정이 끝나면 숙소에서 아빠의 얼굴을 까먹지는 않았을지 걱정되는 아들과 전화하기 바빴으며, 은근히 낯짝을 가리는 매버릭 또한 이런저런 초대에 웃는 얼굴로 거절의 대답을 건네고 나면 남는 이들이 뻔했다. 비행 전날에는 술 금지. 아이스의 규칙에 반발하는 이는 없었으므로 그들은 빈 곳에 모여 적당히 할 거리를 가져와 시간을 보냈다. 시시콜콜한 이야기의 끝은 이상하게도 꼭 같은 인물이었다. 그래서 오늘 진짜 하드 덱 어기고 내려갔대? 제스터가 꽁지 빠지게 도망갔다는데, 구스 말로는. 구스도 제정신은 아니야. 낄낄대는 웃음 사이에서 비행기 모형을 들고 노래를 흥얼거리던 슬라이더가 생각났다는 듯 입을 열었다.

"매버릭한테 뽀뽀한 날 제스터 잡았잖아.."
"미친 새끼."
"넌 언젠가 진짜 매버릭한테 사이드와인더 맞고 격추당할 거야."

 

구겨진 콜라 캔을 손끝으로 빙빙 돌리던 울프맨이 낄낄대며 슬라이더를 조준했다. 락온 해. 전투기가 징킹하듯 이리저리 상체를 흔드는 슬라이더를 보며 선다운이 관자놀이 옆에 손가락을 빙빙 돌렸다. 비행장에서 걸어가는 머리통이 보이는데 그냥 들어 올려서 뺨에다가 - 순식간에 쏟아지는 야유와 욕설에 슬라이더가 과장된 몸짓으로 감사인사를 표했다. 가슴에 손을 올리고 환호라도 받은 양 행동하는 몸짓에 할리우드가 모자를 던졌다. 근데 비행이랑 매버릭한테 하는 뽀뽀랑 무슨 상관인데? 쉴 새 없이 낄낄대는 사람들 틈 사이서 혼자 조용하게 펜만 돌리던 아이스도 대화에 집중했다. 뺨에 입술을 누른 거랑, 제스터랑 무슨 상관인 거냐고. 대답을 필요로 하는 문장 끝에 슬라이더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냥, 의식 같은 거지. 뽀뽀하면 그날 비행이 잘 풀리느니라. 그런 거. 수석인 놈들이 더하다고 주먹이 날아올 기세에 잽싸게 말을 붙였다. 너네도 한번 해 보던가.

03.

아이스는 그들이 진짜 그것을 실행에 옮길 줄 예상하지 못했다.
이들이 비행에 있어서는 에고 높은 엘리트 파일럿이라는 것을 깜빡한 탓이다.

04.

매버릭은 아주 진지하게, 짧지 않은 인생에서 제일 심각하게 고민했다. 이 새끼들을 전부 쏘아버리고 영창에 가 늙을 때까지 복역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할리우드가 득달같이 달려와 관자놀이에 입술을 말 그대로 갖다 박았을 때는 상황 파악이 되질 않아 슬라이더에게 퍼부은 것만큼 욕을 하지도 못했다. 머리카락을 전부 쥐어뜯어 버려? 칭찬을 잘 하지 않는 바이퍼가 드물게 할리우드에게 잘했더군, 하고 말을 던졌을 때 할리우드는 매버릭이 머릿속에서 저를 조각내고 있는 줄도 모르고 환한 얼굴로 매버릭을 돌아다 보았다. 이때만 해도 이 엿 같은 '의식'이 행해지고 있다는 것은 파악하지 못한 매버릭이었다. 다음 날 바이퍼에게 먼지나게 털려 기가 꺾인 매버릭의 곁에 다가와 눈치를 보던 치퍼가 정수리에 입술을 누르고 가기 전까지는.

 

이 개새끼들이. 부글거리며 끓어오르는 화에 씨근덕대다 주먹으로 라커를 내리치는 매버릭을 눈치 보며 쳐다보던 할리우드가 잽싸게 진실을 뱉었다. 슬라이더가 먼저 시작한 거야. 분노로 몸이 떨리던 매버릭이 그 말에 헛웃음을 흘렸다. 그 새끼가 그랬다고? 근데 너네까지 그러는 건 뭐야? 분노의 대상을 조금 몰아보려던 시도가 순식간에 물거품이 되고 다시 동공이 흔들리기 시작한 파일럿들에 매버릭이 마른세수를 했다. 비행을 시발 지금 ... 어이가 없는 추태에 말문마저 막힌 매버릭이 무게중심을 옮겨 비딱하게 서자 안절부절한 상태로 서 있던 구스가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그래서? 매버릭한테는 뭘 해 줄 건데?

 

놀랍게도 매버릭은 주춤대며 나오는 사과와 그 말도 안 되는 대가를 받아들였다. 울프맨. 너는 무스탕 사 내. 브랜드는 내가 정할 거야. 치퍼. 너는 다음 주 가와사키 정비하러 갈 때 네가 결제해. 내가 저번에 오토바이 타고 들어오다 제대로 갈았던 거 기억나지? 한두 푼 하는 게 아닐걸. 선을 넘은 장난이었으나 적당한 수준에서 나머지와도 거래를 맺은 매버릭이 라커룸을 나가다 다시 우뚝 서서 울컥 올라오는 분노를 마저 삼켜냈다. 또 이러 ... 이어지지 않은 말에는 전부 고개만 열심히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저들이 생각해도 잘못한 짓이었기에. 

매브, 어디 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화가 난 매버릭이 혼자 있는 게 걱정된 구스가 급하게 말을 걸자 매버릭이 잠깐 숨을 멈췄다. 슬라이더 눈알 파내러. 발걸음을 옮기는 저보다 작은 몸에 거위가 날개를 퍼덕였다. 매브! 안 돼! 나 멀쩡하게 졸업하고 트럭 몰 거라고! 같이 가야지! 야!

 

 

05. 

자신이 생각해도 남이 생각해도 지극히 관대하게 넘어가 준 매버릭이 제 선택을 후회한 때는 수업이 끝나고 바이퍼가 수염을 씰룩이다 목소리를 가다듬고 파일럿은 미신을 믿지 않는다고 한마디를 한 후에 교실을 나갔을 때였다. 자리를 거칠게 박차고 일어나는 매버릭에 RWR 사운드를 머릿속에서 기민하게 감지한 슬라이더가 손바닥을 바짝 들어 올려 항복의 자세를 취했다. 내가 미안. 짧게 다듬어진 곱슬머리를 전부 쥐어뜯어 버리고 싶은 얼굴을 한참 바라보던 슬라이더가 긴장했고, 팽팽한 시선 사이를 구부러트린 건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아이스맨이었다. 매버릭. 앉은 자리에서 매버릭을 올려다본 아이스가 낮게 성대를 울렸다. 미안해. 여전히 못 박힌 듯 서 있는 것을 구스가 어깨를 잡아다 끌었다. 가자, 매브. 

06.

 

바이퍼와의 세 번째 공중전 훈련 전 구스가 매버릭을 껴안았다. 장난해 구스? 비행장 한가운데에 덩그러니 멈춰 선 매버릭을 민망한 얼굴로 선글라스를 내린 구스가 바라보았다. 매브. 안전할 수 있다면 우리도 해야 하지 않겠어. 바짝 깎은 옆통수를 갉작인 구스를 가만 쳐다보던 매버릭이 몸을 돌렸다. 그날 F-14 복좌기 한 대가 훈련에 필요했던 시간보다 더 오래 배면비행을 유지했고, 그 전투기의 후방석에 앉는 RIO가 지상에 착륙하자마자 비행장 구석에서 싹싹 빌었다는 소문이 전해졌다. 매브. 내가 미안. 

 

 

07.

 

살아오면서 들었을 어지간한 사과를 몰아 들은 기분인 매버릭이 침대 위에 널브러져 이마를 훑었다. 어둠 속에서 맛이 가기 시작한 침대 옆 등이 간헐적으로 꺼졌다 다시 켜지기를 반복했다. 매버릭은 꼭 그게 근래 정신없는 저의 정신을 나타내는 것 같아 억지로 눈을 감았다. 다가온 어둠 속에서 떠오르는 건 전투기도 씻기 전까지 머릿속에 욱여넣은 교본도 아닌 사람의 형상이라 매버릭이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흩트렸다. 망할 아이스맨. 남들 다 한 번씩 장난으로라도 제 이름을 부르고 갈 때 아이스맨은 끝내 아무런 행동도 보이지 않고 비행을 끝냈다. 네 비행은 위험하다며 적개심을 드러낼 때는 언제고 저를 끌어안고 뛰어가는 선다운을 노려보던 반짝이는 밀 빛 머리의 남자가 제 머릿속에서 어지러이 날아다니는 듯 해 속이 쓰릴 지경이었다. 망할 아이스맨... 톰 카잔스키라는 듣기만 해도 눈이 돌아갈 성을 가진 남자가 저를 망치고 있었다. 이래저래.

 

 

08.

 

잠이 오지 않았다. 눈을 감으면 어른거리는 것이 매버릭을 들어다 뺨에 얼굴을 갖다 대던 슬라이더였으며, 모로 누워 눈을 깜빡이자면 시야에 차는 게 매버릭의 목덜미를 틀어쥔 할리우드였다. 헛것이 보이는 파일럿이 비행에 나가면 어떻게 되더라. 최소 열 네 개의 비행착각 관련 요소가 떠오르는 것에 아이스가 피곤한 눈을 비볐다. 몸에 이상이 생기면 자연스레 '그래서 내일 비행을 할 수 있는가'로 생각이 이어지는 것에는 저도 신물이 났으나 어쩔 수 없었다.

 

무슨 짓을 하고 다녔기에 매버릭이라는 콜사인이 갖다 붙었는지 생긴 게 궁금하기까지 해 아이스는 나름대로 매버릭을 만나기까지 내심 기대를 했다. 얼마나 대단한 무뢰배이기에.작지 않은 기대감에 마더구스의 옆에 있는 까만 머리가 옆으로 돌아봤을 때는 어땠더라. 제 모든 상상은 허수로 돌아갔고, 단단하고 높은 호선을 그리며 만년필로 그은 듯한 코끝이 둥글어 밑으로 떨어지는 입술로 눈이 갔나. 보드라운 호선의 입술 양 끝이 살짝 말려 올라간 모양새가 떠나려는 눈길을 잡아두었다. 사라졌다 나타나길 반복하는 입꼬리에 걸린 것은 웃음이 아니라 아무래도 저인 듯하였다.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말이 곱게 나가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처사였다. 그렇게 위험하게 비행하다간 하늘에서 길을 잃을 것이라고 소리치고 싶었으나 제가 뱉는 말이 미래가 될 순 없었기에 그런 소리는 할 수 없었다. 네가 얼마나 위험한 짓을 하고 다니는 건지 제발 좀 알아두라고. 아이스는 속이 답답했다. 비행을 사랑하는 놈이 오래 비행할 생각은 안 하는 게 말이 되냐고. 제 성정에 맞지 않게 누구라도 붙잡고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만치 저는 매버릭을 생각하고 있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어쩌면 그보다는 자의가 조금 더 크게. 결단을 내려야 할 때였다.

 

 

09.

 

문을 두드리려고 주먹을 쥔 손이 멈춰 섰다.

열린 문 뒤에 아몬드 빛이 퍼져나간 에메랄드색 눈동자가 당황으로 커지다 중심을 잡았다.

 

 

10.

 

다음 주 내내 비행 훈련 없는데.

열린 문 뒤 손을 들고 서 있던 아이스와 마주한 건 매버릭이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나가서 산책이나 한 바퀴 하고 오려던 계획은 깜빡이지도 않고 저를 쳐다보는 투명한 눈동자에 물거품이 되었고, 필요한 거 있느냐고 어색하게 물어보려던 질문은 눈발이 땅에 내려앉듯 무게감 없이, 그러나 흔적은 남게 다가오는 입술에 꿀꺽 집어넣어야 했다. 발끝이 얼어붙고 열린 문을 부여잡고 있던 손이 아래로 힘없이 떨어졌다. 주춤대며 시선을 올린 끝에는 여전히 동요하지 않는 얼음장 같은 눈동자가 자리 잡아야 했는데, 정작 저와 마주한 건 미친 듯이 흔들리고 있는 동공이었다. 그래서였다. 다음 주가 어쩌고 하는 소리가 뇌리를 거치지 않고 튀어나온 연유가.

 

알고 있어.

더럽게 평온한 어조였다. 그래, 당연히 알고 있었겠지. 매버릭은 헛웃음이 나려던 걸 어금니 뒤로 삼켰다. 이번에는 조금 더 오래 머물다 가는 입술이었다. 얼음이 녹아 젖은 자국을 만들어낸 양 시간의 흐름이 티가 나는 입맞춤.

 

핑계 없는 입맞춤으로 모든 감정이 시작되었고, 짜증 날 만큼 인정하기 싫게도 저는 그 입맞춤이 좋았다.


비행 훈련이 내일 당장 있었으면 할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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