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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과 사, 구별하라.

이 말이 참 듣기 싫었다. 사이에 선이 그어지는 느낌이 들어서. 그는 공석에서 형이라는 호칭을 병적으로 싫어했다. 단둘이 있을 때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때만큼은 형이 형으로 보이지 않았다. 상사, 그것도 자기보다 한참은 위에 있는 군 장성. 수천 명의 군인을 이끄는 장군. 그럴 때마다 자신과는 상관없다는 듯, 멀게만 느껴졌다. 아마 형은 모르겠지. 좋아하는 마음이 너무 커서 어떨 때는 선을 넘어버린다는 것을. 그래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았고 모르지 않았지만 그것이 항상 지켜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럴 때마다 정신차리라며 진우는 일침을 놓곤 했다.

진우 또한 그러한 마음을 모르지는 않았을 테다. 오히려 잘 알았고, 그래서 더 칼같이 지켰을지도 모른다. 친분이 있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철저하게 지키던 그였지만 철우는 가족이고, 하나뿐인 동생이었기 때문에 더 냉정하게 굴었다. 남들 입에서 형 득을 봤다느니, 형만 믿고 열심히 안한다느니 하는 뒷소리가 나오는 게 끔찍하리만큼 싫어서였다. 철우가 저를 이 자리까지 올리기 위해 한 일들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랬다. 저 말고 자신에게 더 집중했다면 지금보다 더 높은 자리에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 해서 진우가 항상 냉정하게만 군 것은 아니다. 사석에서는 누구보다 좋은 형이고 가족이었다. 허물없이 동생을 대했고, 그때만큼은 어떤 어리광을 부려도 다 받아주었다. 어릴 때 그러했던 것처럼.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시절이었지만 가끔씩은 그 시절로 돌아간 듯 하다는 착각을 하기도 했다. 형이라 불러도, 말을 편하게 해도 싫은 소리 하나 하지 않았다. 그렇게 여타 다른 형제들처럼 시덥잖은 농담을 던지면서 여가시간을 보내곤 했는데 그것이 매일이 비슷하고 따분한 일상에서 몇 안되는 재미 중 하나였다. 남들이 듣는다면 그 사람이? 라고 할 풍경이겠지만 철우는 그런 모습이 익숙했다. 그래서 군복을 입었을 때도 자기도 모르게 어리광을 부리게 되는 것이었을지도 모르지. 

 

 

진우를 지금 자리까지 올리기 위해서 많은 일을 했었다. 자세히 말할 수는 없지만 여러가지 일을 많이 했다. 이리저리 발품을 팔면서 높으신 분들도 많이 만나러 다녔고 그러면서 사탕발린 소리도 많이 했다. 그렇게 한 데에는 형의 부탁도 있었지만 개인적인 사심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그래서 형이 빛난다면, 아무래도 괜찮았다. 능력이 되는 만큼 받쳐주고 싶었다.
 

나중에 실제로 남들이 부러워 할 만큼의 높은 자리까지 올라간 형을 보면서 철우는 매우 뿌듯해했다. 드디어 자신의 노력이 빛을 발하는 거 같아서. 그리고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이 자기 형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럽기도 했다. 그날 밤 다 네 덕분이라며 정말 오랜만에 술을 진탕 마셨었다. 지독하게 취해서 뭘 했는지 기억도 못할만큼. 

그뒤로 오만해진건지 아니면 어린 마음에 자기 덕분이란 걸 티내고 싶었던 건지 몇 번 어리광을 부렸다가 정말 눈물이 쏙 빠질 만큼 호되게 혼이 났었다. 화를 잘 안내는 사람이었지만 조금이라도 자기가 그어둔 선을 넘어온다 싶으면 가만히 냅두질 않았다. 그때마다 정신차리라는 듯이 공과 사를 구별하라는 말을 잊지 않고 하곤 했다. 보는 눈이 있어서라는 건 알았으나 보는 눈이 없다면 한번쯤은 받아줘도 되지 않나 싶어 서운한 마음이 들었었다. 그러나 그런 마음조차도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사라져갔고, 나이를 먹으면서 어리광을 부릴 필요도 없다는 걸 깨닫게 돼서 무덤덤해졌다. 어쩌면 공과 사를 구별하라는 말이 듣기 싫어 그렇게 된 걸지도 모른다. 평생을 들어도 익숙해지지 않을 말 같았다. 그때부터 한 번도 형이라는 단어를 군대 안에서는 꺼내지 않았다. 군대 안에서 박진우는 형이 아니라 위원장을 옆에서 보좌하는 호위총국장이어서 그렇게 딱딱하게 군다는 이유를 그제서야 제대로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모습이 익숙해졌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언제 만나도 어색했지만 둘의 위치를 알았기에 그에 맞게 행동할 뿐이다.


그래서 군인일 때 그에게 이름으로 불릴 일은 평생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돌아오는 것은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이라는 사실을 알았으니까. 제 지위를 모르고 어린 애처럼 굴었던 전날이 부끄러워지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정말 중요한 임무였고,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어야 할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오랜만에 둘이 있는 시간이 길어져 반가운 마음에 동생같이 굴었고, 이번에도 진우는 한결같이 똑같은 말로 일관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아차 싶었다. 지금은 형이 아니라 상사지. 조금은 무서웠다. 그 뒤로는 칼같이 호칭을 지켜줬고 모든 일든 순조롭게 흘러가는 듯했다. 아무도 중간에 이런 식으로 일이 어그러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어떻게든 죽을거란 생각을 했지만 이렇게 될 거라곤 생각을 못했지. 정신이 아득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지금까지 꽤 많은 일을 겪어서 이것조차도 두렵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두려웠다. 

진우는 그때 처음으로 스스로 그어두고 절대 넘지 않겠다 했던 선을 스스로 넘었다. 한 번도 형이 이름을 불러줄 만큼 흥분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평소답지 않게 철우야 라고 부르는 목소리가 떨렸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이름을 불러주자 조금은 진정되는 듯 하면서, 이것이 마지막으로 듣게 될 이름이라는 걸 알아 서러웠다. 그래도 가장 싫어하는 말이 아닌 가장 좋아하는 말을 마지막으로 듣게 되어서 고마웠다.

형만 믿고, 째꼼만 견디라.

2020 강철비 유니버스 합작: 경계,선

주최 & 디자인 |  구구 (@QB55yn6)

참여자 |  다람이 베개 엘 (익명) 잎 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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